역사인물
최유엄과 대청도 명신 이안눌 의사 윤호
학자 최해 정치가 이산보 무인 전양진
대학자 백이정 공신 이시방 청산리의 별 김좌진
이제현 영웅 인발 무인 황재현
무장 김성우 성리학자 서기 열사 백관형
충신 김선지 석학정치가 이산해 열사 김복한
학자 서거정 예학자 이지함 열사 유준근
백유공 숭정처사 채극철 열사 백락관
정치가 김극성 명신 강순 순교복자비
무신 이지인 선비 황윤길 동양자 김광제
명신 이준경 이경재
절해의 고도에 유배된 충신 최유엄(崔有엄)과 대청도(大靑島)

그는 고려 충숙왕때의 명신으로 고려조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는 고려조 문명이 있었던 최자의 아들로 태어나 성품이 염일(焰逸)하여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았고 벼슬살이 10년이 가도록 변괴가 없었으나 충렬왕(忠烈王)이 그의 청렴하고 결백하여 학문이 깊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크게 등용시키니 그게 바로 대승이라는 벼슬이었다.

그는 높은 벼슬에 오를수록 많은 사람을 사귀고 옛 것을 개혁하며 직언을 잘하니 그이 명성이 높아갈수록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는 옳은 일이면 왕에게도 직언을 잘하니 여러 가지로 많은 직언을 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미움을 받게 되었다.

허나 옳은 것을 바로 세우는 것이 신하의 도리라고 생각한 그는 임금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또 시사를 직언하였다가 드디어 왕의 큰 노여움을 사고 유배를 당하니 그 유배지가 대청도였다.

옛부터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들려오는 소리란 섬에 부딪히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그리고 물새소리뿐인 이곳에 유배될 때 실은 굶어 죽으라고 보낸 것이나 다름 없으나 그를 태우고 온 뱃사공 한 사람이 그이 선비됨에 놀래어 몰래 이곳에 남게 되니 그 뱃사공의 덕으로 굶어죽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한다.

원래가 깊은 바다에 뾰쪽하게 자리한 섬에 숲이 우거졌고 나무가 있어서 뱃사공은 나무를 베어서 뗏목을 만들었고 최유엄과 함께 전복을 따고 물새알을 주어서 뱃길로 육지에까지 나가서 물품을 구입하니 유배지에서 굶어죽으라는 최유엄은 오히려 살이 찌고 근심이 없이 지냈다 한다.

최유엄은 그래서 대청도야 말로 천하의 낙원이라고 글을 지은 것도 있지만 벼슬살이에서 떠나 백성으로서 지냄이 이렇게 홀가분하냐! 고 자신을 달랬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승지(承旨) 조인기의 노력으로 유배에서 풀리어 조정에서 배를 보냈을 때 대청도를 떠나기가 섭섭해서 이틀을 곰곰히 생각하였다 한다.

그는 조정에 다시 들어가서 벼슬길에 올랐다가 그후 다시 시사(詩史)심사와 함께 주간하며 상소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해도에 유배되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생각하기를 사람의 마음도 가지가지지만 땅도 가지가지요, 섬도 참 가지가지라는 시조는 유명한 그의 시의 한절이다.

그는 또 조인기의 힘으로 귀향살이에서 풀리어 우부승지 부지밀직사사 감찰대부 우상대 등 많은 벼슬길에 올랐다가 정승까지 올랐다. 그는 고려의 어려운 내외정사를 잘 풀이해 갔다.

원나라에서 고려의 노비의 법을 만들어 고려를 괴롭히려고 할 때에 원경(元京)에 들어가 이를 막았고 또한 원제가 충선왕을 폐하고 다른 방법을 연구할 때 그는 다시 원제(元帝)에게 극간하여 이를 중지 시키는 등 공이 컸다.

고려가 있음으로 최유엄이 있고 최유엄이 있으므로 고려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어려운 고비를 무난히 넘기는 정치가였다.

충선왕이 환국하여 그이 충성에 감탄한 나머지 옥퇴를 하사하고 그가 다시 왕위에 오르자마자 도당에 불러 그와 더불어 군국대사를 논의하는 충신이었다. 그후 다시 고려에 어려운 고비가 닥쳐왔다. 원나라는 고려에 성을 두고 세록노비의 법을 개혁하라 할 때에 그는 목숨을 걸고 원나라의 중서성에 들어갔다.

그는 원나라 황제에게 간청하기를 노비란 죄인을 가르며 말하는 것이거늘 어째서 고려가 원나라의 죄인이 될 수 있느냐고 간청하니 원나라의 황제도 그의 품위를 보고 중지 시켰다 한다.

그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환국하니 임금은 그의 모습을 보자 맨발로 뛰어나왔고 백성들은 그를 가르켜 세주라 하였으며 왕은 여러 군신 앞에서 「삼한의 현존(現存)은 최시중의 힘이다」하였다.

사조를 역사한 원노(元老)로서 그는 96세에 졸하니 충헌이라고 하였다. 그는 살았을 때 그의 뒤에는 대청도에서 그를 구해준 뱃사공이 항시 그림자처럼 뒤를 보살피다가 최유엄의 죽음으로 그도 늙어 죽었다 하는데 그때 그는 96세였다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대청도의 물결처럼 헤치고 살아야 한단는 말이 있어 대청도는 대해(大海)의 섬이지만 널리 알려진 섬이다.